낭견(狼犬)으로부터 가견(家犬)에게(1922, 방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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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1922년 2월 『개벽』 제2호에 발표

─ 삽사리전 ─

술년(戌年) 새해의 서광(瑞光)이 만리에 빛나는데 유원정(惟元正)에 과세나 잘 하였으며 상내 생활(箱內生活)이 별고나 없는지, 두루 궁금하이. 이곳 우리는 범백(凡百)이 여전한 중에 무사히 묵은 해를 보냈으며 더욱이 이 새해에는 우리 술년을 맞이하여, 원기 백 배, 심신이 해와 함께 새롭고 천하가 세상의 우리만을 위하여 된 것 같으이…….
어느 임자가 따로 있으니 행동이 뜻과 같지를 못할까. 어느 한이 있으니 숙식(宿食)에 궁핍(窮乏)할까. 우리가 좋아하는 백설은 산천을 덮고, 그 위에 술년의 첫 햇볕이 찬란히 비치네. 상중 생활(箱中生活)에 파묻혀 있는 자네로서는 짐작도 못할 이 천지에서 한없이 시원하고 한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이 새해를 맞이할 때에 생각을 말리라 말리라 하였지마는 또 다시 신세의 신세를 생각 아니치 못하였네.
세월이 빠르기도 하지. 자네를 작별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란 세월이 지나갔네그려.
자네나 내가 다 같이 즐겨하는 눈은 오시고 또 녹고 오시고 녹고 하여 백설의 겨울이 몇 번씩이나 지나도록 조용히 만날 겨를이 없이 지내서 이제는 형제의 몸으로 아주 딴 남같이 되고 말았네그려.
이래도 형제요, 저래도 형제지. 아무리한들 형제의 관계야 끊을 수 있겠나……. 자네는 그 집에 가서 마음이 변했거나 무슨 짓을 하거나 우리는 한날 한시를 잊어 본 적이 없었네.
이렇게 시원하고, 이렇게 즐거운 생활을 알지도 못하고, 조그만 상자 속에서 웅크리고만 지내고 있는 자네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눈문을 금치 못하네. 한날 한시에 한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우리 형제로서 자네 하나가 팔자가 그렇게도 사나울 줄은 알지 못하였네.
개는 개로서의 살림이 따로 있고, 개는 개로서의 살 세상이 곧 우리의 세상은 우리에게 따로 있네. 지극히 공정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그만한 세상과 그만큼 먹을 것을 베풀어 주신 것이라네. 사람들끼리는 사람의 생활이 따로 있는 것일세.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사람 노릇을 하기에 힘쓸 것이요, 개들은 개로서의 생활을 하여 나갈 것일세. 자네는 그것을 모르고, 개는 남의 집에서 밥찌끼나 얻어먹고, 도적이나 지켜 주고, 주인에게 순종을 잘 하는 것만이 개의 원래의 사명인줄 알고 있지 않나. 우리는 그것을 생각할수록 섧고 불쌍해서 견디지 못할 고통을 느끼네.
일전에는 하도 보고 싶고, 하도 궁금하여서 찾아보러 갔더니, 얻어먹는 밥찌끼에 눈까지 마음까지 변하여서 나를 몰라보고 자꾸 짖지 않겠나? 그 안타까운 찌꺼기 밥을 뺏기는 줄 알고 자네는 주인에게 호소해서 주인의 하인이 작대기로 내 허리를 때려서 하마터면 허리를 삘 뻔하고 돌아왔네.
형제까지도 알아보지 못하고 기가 나서 짖는 자네를 보고 와서 동생 하나를 영영 잃어버렸구나 하고 밤새도록 울었다네.
자네와 나와 우리 삼형제가, 그 좁은 어머니 뱃속에서 고개와 몸을 맞대고 육십여 일이나 두고 어떻게 지냈으며 세상에 나와선들 달 반이나 두고, 한 어머니 젖을 빨고, 한 어머니 품에서 길리울 때는 얼마나 의좋게 지냈었나…….
아버지도 모르고 어머니 한 분과 우리 삼형제만 단 네 식구가 오순도순 살아오다가, 간단히 젖이 떨어지려 할 때에 그 무지한 사람놈이 ─ 제깐에는 우리 셋 중에서 고르고 골라서 자네를 덥석 집어갈 때에 약한 힘으로 막지는 못하고 우리가 얼마나 땅을 치며 통곡을 하였는지 모르네. 밤새도록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그 이튿날도 끼니를 끊고 울고만 있었다네. 잡혀갈 때는 자네도 소리쳐 울며, 자네 눈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나. 그래도 우리는 믿기를 자네가 저렇게 잡혀는 가더라도 기회만 있으면 도로 찾아오려니하고 기다렸더니, 영영 자네는 환장이 되고 말았네그려…….
찌꺼기나마 눌은밥을 주고 석유 궤짝이나마 집이라고 지어주니까, 가장 좋은 세상이나 만난 줄 알고 자네는 감지덕지(感之德之)하고 있게 되어, 그만 아주 종놈이 되고 말았네그려.
조금만 더 크게 자라서 갔더라도, 이 우리 세상 시원하고, 넓고 숙식(宿食)이 편한 이 세상의 맛을 알고 갔을 것이요, 이 세상이 있는 줄을 알면, 지금이라도 곧 도망이라도 하여 올 것을, 너무 아는 게 없고, 너무 어렸을 때 잡혀가 놓아서, 그만 세상에 그것밖에 더 좋은 게 없는 줄 알고, 아주 썩어 버린 개가 되고 말았네그려.
어리고 무식한 소견에 집을 주고, 먹을 것을 주고, 다른 개가 오면 때려쫓아 주니까, 자네는 가장 다른 개보다 특출하고 특별히 사람의 총애(寵愛)를 입는 것 같이 생각되지. 그러나 그것이 자네를 영영 아주 일생의 종을 삼으려는 사람의 꾀일세.
그나마 처음 잡혀갔을 때에는 자네 목에 쇠사슬을 늘이고, 잔뜩 비끄러매어서 꼼짝도 못하게 하지 않았나? 그래도 그 줄에 모가지를 옭혀 있으면서도 눌은밥 찌끼를 얻어먹는 것만 좋아서 다소곳이 있었었네그려. 자네는 모르리마는 어머니와 우리가 가끔가끔 문 밖에서 쇠줄에 매어 있는 자네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네.
우리에게도 남과 같이 오관이 있고 그 중에도 냄새 맡기와 소리 듣기로 사람보다 나은 재주를 갖추어 가지고 있다네. 저 먼 데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우리끼리는 벌써 속히 듣고, 냄새만 맡으면 그 종별과 있는 방향까지 아는 게 우리들만의 재주라네. 그나 그뿐인가, 달음질 잘 하고 헤엄 잘 하기로도 유명하지.
그 것을 알고 이용하려는 놈들이 사람들이라네. 자네에게 다정히 해 주는 체하는 게, 거저 그러는 줄 아나? 밤이면 나는 침실에서 잠자고 있을 것이니, 너는 도적을 지켜 달라는 것이고, 내가 산간에 총렵(銃獵)을 가서는 총만 쏘고 있을게, 네가 가서 집어 오라는 것이라네. 그렇게 부려먹다가 자네가 두어 살 쯤 되어 보게, 우리의 일생은 보통 12, 3년이라네. 15세까지 사는 것도 있고, 서양 어디서는 30세까지 산 개도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예외구, 보통은 12, 3세면 그만이니, 그렇게 늙어서 눈도 어두워지고, 눈곱이나 끼고, 코로 맡는 힘이나, 귀로 듣는 힘이 둔해져 보게……. 일본 여편네는 비단옷을 입혀서 한 자리에 끼고 자기까지 하는 이가 있다니, 그렇게까지 정을 들이면 죽어서 땅에 파묻어라도 줄까……. 일생을 그렇게 부려먹다가 늙기만 하면 개백작인지, 백장인지에게 내어 맡기면 그만 목숨이 없어지는 그런 참혹한 보수밖에 또 있는 줄 아나? 그러나 그것도 덜 하니……, 사냥개 노릇을 하여 이것도 물어 오고, 저것도 잡아다 주고 하다가 물어 올것 잡아 올 것이 없게 되면 이번에는 그 사냥개가 그 총에 맞아 죽느니…….
그것은 이상하게도 으레 그렇겠다. 이런 신세를 자네라도 곰곰이 생각하면 한심하지 않을까?
그렇게 참혹한 보수가 오기까지 먹여 주는 것이나마 자네를 위하여 새로 구해 주는 것인 줄 아나? 이놈 먹던 것, 저놈 먹던 것, 먹다먹다 못해서 남긴 것을 모아서 어디다 버려 둘 곳이 없으니까 자네에게 치우라는 것이라네.
여보게 삽사리 ─.
온갖 생물은 본의대로 자연대로 뜻껏, 마음껏 다리를 펴는 곳에 생의 존귀한 값이 있는 것이라네! 잠시 입이 달고 배가 부르다고, 거기에 자족하여 자기 본연의 생활을 아주 버려서는 차라리 죽는 것만 같지 못한 것일세.
자네는 자네의 지금의 상자 속 생활에 자족하여, 예전 본연의 생활을 잊어버리고 있지…….그 생활에 자족해 있으면 그 끝에 혹독한 보수, 비참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깨달아야 되네. 여보게 삽사리! 그래도 형제인 탓으로 눈물로써 이 글을 보내는 것이니, 새해를 맞이하는 기 기회에 깊이 생각하는 바 있기를 마음을 다하여 바라고 비네.
아! 삽사리!
새해는 닥뜨려 왔네. 특별히 우리의 해인 술년(戌年)이 닥뜨려 왔네.
오막살이 인종(忍從)의 집을 내어던지고 쇠사슬 구속의 굴레를 벗어 버리고 많은 형제를 따라 돌아와 새로 맞이하는 이 해를 의의 있게 할 줄로 믿고, 그만 그치네.
마지막으로 건전한 몸으로 기틀 보기를 성심으로 바랄 뿐일세.

─ 다시 돌아온 우리 해 정월 초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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