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의 정(1930, 방정환)
ㅁ 1930년 9, 10월 대특집호 『어린이』 8권 8호에 발표
두 달 전부터 준비하여 오고, 한 달 전부터 연습을 하여 오던 추기 운동회가 단 하룻밤을 격하였을 뿐이므로, 이 날은 벌써 그 넓은 교정이 천막과 붉은 장막과 만국기로 덮였습니다. 울긋불긋한 장식으로 그득 찬 운동장과 같이 어린 학생들의 가슴도 기쁨에 그득하여 공연히 어깨가 으쓱으쓱하고 마음이 조용치를 않아서 저녁밥도 잘 안 먹고 가로로 나섰습니다.
운동복 사러 가는 사람, 운동화 사러 가는 사람, 과자 과실 사러 가는 사람, 운동복 속에 입을 내복 사러 가는 사람, 제각각 준비하러 돌아다니느라고 분주한 판이었습니다.
성호와 영갑이는 양말과 운동화 사러 가자고 창남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집 대문에 들어서서 채 부르기도 전에 안에서 창남이와 그 어머니의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나왔습니다.
“글쎄, 얼른 가지고 갔다 오너라. 운동복 없는 사람은 오지 말란다면서 왜 그러고 있니……. 전당국도 시간이 있는데 문 닫기 전에 얼른 가야지…….”
“관계없어요. 내일 하루 결석하면 그만이지요. 그걸 갖다가 잡히면 어머니 병환이 나으셔서 무얼 입고 회사에를 가셔요.”
“이 애야, 빠지는 것이 무엇이냐. 이 때까지 몸 아파도 결석해 본 일이 없다가 운동회날 빠진단 말이냐? 아무리 집안이 구차하여도 자라가는 아이가 남의 모제(아이들)에게 빠지면 안 된다. 어미야, 아무것을 입고 나서면 어떻단 말이냐. 어서 더 어둡기 전에 얼른 갔다 오너라.”
아무리 빈한하여도 자기 뼈를 깎아서라도 어린 아들 하나만은 남에게 빠지지 않게 해 주려 하면서도 운동복 한 벌을 못 사 주어 어린 가슴을 울리는 슬픈 신세를 생각하고 어머니는 병석에 울고 계시고, 어린 창남이는 마루 끝에 앉아서 아버지 없는 설움에 눈물만 흘리고 앉았습니다.
“관계없으니 염려 마세요. 운동회 같은 날은 공부 안 하는 날이니까 빠져도 괜찮아요. 안 갈 테야요.”
그러나, 그 말소리는 복바쳐 나오는 울음에 흔들리어 떨리었습니다.
조금 아까 해어질 때까지 같이 매달려 솔문을 세우고 만국기를 달고, 그리고 내일은 안내부 위원으로 뽑히기까지 한 창남이가 저런 말을 하게 될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슬프랴 싶어서, 두 동무는 차마 부르지 못하고 가만가만히 대문 밖으로 돌아 나왔습니다.
그들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습니다.
“이 애야, 창남이가 불쌍하지 않으냐?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병환이 나시고…….”
“이 애야, 우리 양말 하고 운동화 사는 것을 그만두자!”
“그리고, 그 돈으로 창남이 운동복을 한 벌 사다가 주자! 우리는 헌 운동화를 그냥 신으면 어떠냐. 양말도 헌것 그냥 신고, 맨발 벗고라도 운동만 잘하면 그만이지.”
“그러자! 그러면 제일 병환 중에 울고 계신 창남이 어머니가 좀 좋아하시겠니. 그럼, 지금 곧 그렇게 하자!”
“그럼, 이 사정을 알기는, 동무들 중에도 우리들 뿐이니 우리가 그렇게 안해 주면 누가 그래 주겠니…….”
그 날 밤, 창남이 집 중문 안에 하얀 신문지에 싼 보퉁이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웬일인가 하고 창남이가 어머니 앞에 가 펴 보니까 새로 산 운동복 한 벌과 이런 편지가 한 장 끼어 있었습니다.
……창남아! 네가 내일 빠지면 안내 위원을 누가 하며, 첫째 너의 모친께서 병환 중에 얼마나 상심이 되시겠니……. 이 것을 입고 너의 모친 보시는 데 활발하게 나오너라. 그래서 고생 많으신 모친을 기껍게 해 드리기 바란다.
─ 너의 가장 친한 두 동무로부터 ─
누가 보낸 것인 줄을 알면 늘 만날 때마다 미안해 할 생각을 하고 성명을 적지 아니한 두 동무는 이튿날 맑게 개인 아침에 쾌활히 걸어오는 창남이를 누구보다도 더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