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 종(1926, 방정환)
ㅁ 1926년 6월 『어린이』 4권 6호에 발표
볼그레한 꽃송이같이 어여쁘고 탐스럽던 뻬시의 얼굴은 몇 달이나 앓고 난 사람처럼 양초 빛같이 파랗고 해쓱하였습니다. 그리고, 눈물에 부은 듯 두 눈이 산머리에 넘어가는 저녁 해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면서 한숨만 덧없이 쉬고서 섰습니다.
“아아, 저 해가 넘어가면 저녁 종이 울리고, 저녁 종 소리만 나면 감옥에 갇힌 오빠가 끌려 나와 죽겠구나…….”
혼자서 중얼거릴 때 그의 전신은 그냥 녹아 아스러지는 것 같았습니다. 울어도 소용 없고, 뛰어도 시원치 않고, 가슴만 바작바작 타 가는데, 무심한 저녁 해는 벌써 산머리에 걸쳐서 얼마 남지 아니한 빛으로 멀리 뾰족집 꼭 대기에 종 달린 다락을 뻘겋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아앗! 하면서 넋없이 보던 뻬시 소녀는 전기에 찔린 사람같이 깜짝 놀랐습니다. 저기 저 편, 어두워 가는 발길로 종치는 노인이 검은 옷을 길게 입고, 뾰족집으로 걸어가는 것을 본 까닭이었습니다.
노인은 마음이 좋고 정신도 대단한 이였습니다. 나이 육십이 넘어, 귀가 어둡고 허리가 굽도록 이십 년 동안이나 기나긴 세월을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하루 한 날 같이 조석으로 종을 울려 온 이였습니다.
귀가 어둡고 허리가 아파도 아침과 저녁으로 저 높은 데 달린 종을 울리어 여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리고 또 그들의 마음을 종 소리로 깨끗하게 해 주는 것이 자기의 가장 귀한 천직으로 알며, 지금도 저녁 종을 울리려고 고개 위 뾰족집을 향해 가는 길이었습니다.
“아이구, 여보세요. 저를 좀 보세요.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면서 뻬시는 급히 뛰어 쫓아갔습니다.
노인은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고 그냥 타박타박 가다가 옆에까지 가서 팔을 붙잡은 후에야 알았습니다.
“허허 뻬시로구나. 나는 저녁 종을 치러 간다. 같이 가련?”
“아니야요.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제발 제발 오늘 저녁만 종을 치지 말아 주세요. 종 소리만 나면 아무 죄없이 잡혀 갇힌 저의 오빠가 그만 죽게 됩니다. 오늘 저녁만 치지 말아 주세요.”
귀를 기울이어 간신히 알아들은 노인은,
“그런 줄도 알지만 어떻게 종이야 안 칠 수 있느냐? 내가 죽기 전에야…….”
“그렇지만 무죄한 목숨을 살려 주시려면 오늘 저녁 한 번만 치지 말아 주세요. 뒷마을 다리 밑에서 사람을 죽인 것이 저의 오빠라고 그러지만, 그때 그 시간에 오빠는 저하고 저의 집에 있었어요. 그런데, 공연히 잡혀 갇혀서 오늘 저녁 종 소리만 나면 공연히 공연히 무죄하게 죽는답니다. 제 제발 오늘 저녁 한 번만…….”
애걸 애걸하는 소리에 노인의 눈에서는 굵다란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이 애야, 내가 종을 안 칠 수는 없지 않으냐. 아침과 저녁에 시간을 맞추어 종을 치는 것이 늙은 나의 직책이란다. 이 종 소리가 들리지않는 날은 내 생명이 없어진 날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종 소리 때문에 너의 오빠가 죽는 것이 아니니까. 종을 안 친다고 곧 살아나게 되는 것이 아니란다. 뻬시야,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어깨를 흔들면서 느껴 우는 뻬시의 머리를 만져 주고 자기도 눈물을 씻으면서 노인은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터벅터벅 언덕길을 걸어갔습니다.
뻬시는 아주 절망되었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말이 그르다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아아, 어쩌면 좋을까? 어쩌면 좋을까? 저 노인이 저 언덕을 기어올라가서 저 높은 다락에서 늘어져 내려온 줄을 잡아만 당기면 종 소리가 울려 나겠구나……, 생각하고 걸어가는 노인을 바라보고 또 언덕 위 뾰족집을 쳐다볼때 하늘을 찌를 듯이 높다랗게 솟은 종각은 귀신같이 무서워 보였습니다.
그 때 그 때입니다. 높다란 뾰족한 종각을 바라보던 그 때 뻬시는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후닥닥 뛰어서 제비같이 다람쥐같이 날아갈 듯하여 앞서 가던 노인을 지나쳐 놓고 쏜살같이 언덕을 기어올라서 대궐 문같이 캄캄한 뾰족집 문 속으로 쑥 들어갔습니다.
어찌 급히 왔는지 숨이 탁탁 막히는데 쉬일 사이도 없이 허둥허둥 어두컴컴한 층계를 기어올라갔습니다. 이 층 위에서 삼 층 사 층 층계는 종각으로 올라가는 층계라 소나무 사닥다리처럼 엉성한데 여러 해 두고 한 번도 오르내린 사람이 없어서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습니다.
한숨에 뛰어오를 듯이 허덕허덕 기어올라서 맨 꼭대기 캄캄하고 냄새나는 헛간에 귀신 같은 큰 종이 매달린 곳에까지 이르니 갑자기 가슴이 더 뛰놀았습니다.
그 때 언뜻 조그만 유리창으로 내려다보니까 저 아래 넓은 마당에 그제야 걸어오는 노인이 조그만 강아지 만하게 작게 내려다 보였습니다.
오오, 온다! 온다! 부르짖으면서 뻬시는 사닥다리에서 펄쩍 뛰어 종 속에 매달린 쇠뭉치를 붙잡고 찰싹 달라붙어 쇠뭉치와 함께 종 속에 대롱대롱 달렸습니다.
이렇게 종 속에 쇠뭉치를 얼싸안고 메달렸으면, 저 밑에서 노인이 줄을 잡아 당기더라도 쇠가 종에 닿더라도 소리가 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위험한 짓이었습니다. 종 밑에는 저 아래 밑 층까지 바로 뚫린 층계 놓인 구멍이 있으니 까딱 놓치기만 하면 그대로 내리 떨어져서 가루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팔로 그 높은 데서 매어달려 있으니, 무슨 팔 힘으로 오래 매달려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뻬시는 앞뒤 정신없이, 그냥 뛰어 매달린 것이었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과연 몇 분이 못 지나가서 뻬시의 가늘고 약한 팔은 칼로 찍는 듯이 아파서 도저히 그 몸을 달고 매달려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려다 보면 까마득한데, 손만 놓으면 그냥 떨어져 가루가 될 판인데, 불행히도 그 팔이 아파 왔습니다. 아아, 아슬 또 아슬!
그 때 감옥에서는 벌써 뻬시의 오빠를 끌어내어다가 목을 졸라 죽이는 널빤 위에 올려 세우고, 이제 종 소리가 어서 들리기만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죽을 힘을 다하여 매달려 있는 뻬시의 몸은 갑자기 그 큰 종과 함께 흔들렸습니다. 밑에서 귀먹은 노인이 종 줄을 잡아당기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종 줄에 매달려 한 번 잡아당기면 땡! 다시 늦춰 놓으면 땡, 또 잡아당기면 땡, 종 소리가 크게 날 터인데, 오늘뿐만은 그럴 적마다 뻬시의 몸이 종에 닿아서 종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노인은 귀가 어두워 종 소리가 전처럼 나는 줄로 믿으며 자꾸 잡아당겼습니다. 가엾은 뻬시의 이마에서는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머리는 흩어져 늘어졌습니다. 오냐, 조금만 더 참자! 뻬시는 흔들릴 적마다 떨어질 듯 떨어질 듯하여 이를 악물고 두 눈을 딱 감고 죽을 힘을 다하여 놓치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노라니 그 약한 팔이 저절로 툭툭 터져서 시뻘건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노인은 종을 다 친 후에 오늘 하루의 직책을 무사히 마친 것을 기뻐하면서 저녁 기도를 올리고 가쁜 마음으로 천천히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온 동네 온 거리는 종 소리가 나지 않았다고 벌컥 뒤집혀서 와글와글하였습니다. 그 중에도 감옥에서는 종 소리를 기다리다 못하여 오빠를 다시 들여다 가두고 윗 관청에 보고를 하여서, 윗 관청에서는 곧 사람을 보내어 종 소리가 나지 않은 이유를 조사하게 하였습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내가 분명히 종을 치고 내려오는 길인데요.”
하고, 영문 모르고 이상해 하는 노인과 조사원들이 촛불을 켜 들고 종각 속을 층층이 조사할 때 발견된 것은 맨 꼭대기 먼지 많은 층계 위에 송장같이 쓰러져 있는 뻬시 소녀였습니다.
뻬시 소녀는 관청으로 업혀 가서 거기서야 겨우 소생되었습니다. 거기서 눈물을 흘려 가면서,
“그 날 그 밤에 오빠는 분명히 우리 집에서 저에게 옛날 얘기를 하여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빠를 죄인이라고…….”
느껴 울면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오냐, 뻬시의 말에 거짓말은 없다. 그를 살려 놓아 주어라!”
오빠는 무사히 살아 나왔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 일이 있은 후로부터 너나없이 이 종을 ‘뻬시의 울지않는 종’이라 부르면서, 이 마을 사람들은 해 저무는 저녁때마다 거룩한 종소리를 들으면서, 어린 사람들에게 뻬시의 이야기를 전해 들려서 지금까지도 동네의 자랑으로 전해 내려옵니다.
